나는 근석을 불러와 말했다.

"네가 가서 아랫사람에게 말해라. 교만한 기색을 드러내지 말고 호칭도 함부로 해선 안 된다고 말이다. 지금 아마 누군가가 우리의 과실을 잡으려고 할 것이다."

 

근석이 "예"라고 답하고 말했다.

"노재가 소주께 아뢸 것이 있습니다."

"말해봐라."

"황규전은 화비 마마의 먼 친척..."

나는 손을 들어 그녀에게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고 표시했다.

"알고 있다. 너에게 이 일을 말하려던 참이었어. 새로 온 내감과 궁녀들은 내가 직접 고른 것이지만 모두 밖에서 보낸 사람들이다. 너와 소윤자는 평소보다 더한 정신으로 분발하여 내게 주어진 이들을 잘 지켜보아라. 그들에게 어떤 수완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밖에 그들만 막일을 하게 하고 나의 가까운 일은 여전히 너희들 몇 사람이 시중을 들어라."

 

근석이 말했다.

"노비와 윤 공공은 반드시 조심하고 신중하겠습니다."

 

내가 물었다.

"오늘 약은 다 달였느냐? 유주에게 들고 오게 하면 내가 마시마."

 

현릉이 몸소 내 병세에 관심을 갖게 된 이후로 태의원은 더욱 신중했고 감히 소홀히 할 수 없었으며 온실초는 매일 내 궁에 와서 나를 위하여 맥을 짚었다.

 

약의 양에 대한 일은 다른 사람이 끼어서는 더욱 안 되었고 상황을 감안하여 조금씩 조금씩 내게 줄여서 주었으며 직접 내 약량을 제조하고 나서야 궁녀에게 보내 달였다. 동시에 약성이 서로 맞지 않는 보약으로 내게 보양하게 했다.  

 

황제는 하루 걸러 꼭 나를 보러 왔고 내 기력이 점점 활기를 찾고 얼굴에 혈기가 도는 것을 보고 매우 기뻐하였다.

 

어느날 이른 아침에 내가 막 일어나자 황제의 측근 내감인 소합자가 희색이 만연한 채로 말씀을 전했는데 황제가 조회가 끝나면 나를 보러 오겠다고 말했으니 준비하라는 것이었다.

 

창청이 말했다.

"황상께서 곧 오시면 소주께선 산뜻한 의복으로 바꿔 입으시고 어가를 영접하셔야 할지. 노비가 소주를 도와 영춘계로 빗어드릴까요?"

 

나는 그저 웃으며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근석에게 물었다.

"궁중 후비들은 어가를 영접할 때 대부분 화려하게 화장하고 아름다운 옷을 입느냐?"

"예. 궁중 여자들은 알현하면 황상께서 기뻐하시길 빌며 당연히 매우 아름답게 꾸밉니다."

 

나는 웃음을 머금고 고개를 숙이다 완벽에게 옷을 갈아입게 하였다. 연두색에 백 마리의 나비가 꽃을 지나가는 상의를 은 무늬로 수놓았고 소매만 좀 더 넓게 했는데 바람을 맞으니 쏴쏴 했다. 허리가 조였는데 아래에는 담황색으로 백옥란을 수놓은 치마였다. 단순하게 도심계로 빗었고 유백색 진주 영락만을 걸었는데 실구름 같은 검은 머리가 돋보이며 광택이 났고 비취 비녀 하나를 비스듬히 꽂으니 매우 가는 은술이 드리워졌다.

 

창청이 떠보며 말했다.

"소주 옷은 정말 아름답지만 좀 소담합니다."

 

나는 그저 웃었다.

"이만하면 좋아."

궁중 여자들은 여태껏 황제 눈앞에서 아름다움을 다투고 사치스러우며 화려하게 꾸미니 나는 단지 수수하고 우아한 옷을 입었는데 오히려 그의 이목이 새로움을 느낄 수 있다.  

 

치장을 적절히 하니 잠시 후 황제가 도착했다. 나는 일찌감치 궁문 앞에서 마중을 나갔고 그를 보고 웃으면서 절을 했다. 그는 나를 부축하고 말했다.

"바깥 바람이 센데 어찌 나왔느냐. 어서 나와 함께 들어가자."

 

나는 은혜에 감사하며 일어섰다. 현릉은 내 의복과 장신구를 보더니 과연 눈이 번쩍 뜨였고 웃음을 머금으며 말했다.

"맑은 물에 연꽃이 나오고 천연스레 꾸밈이 없구나. 짐의 완빈은 과연 남달라."

역) 이백의 시.

 

나는 칭찬을 듣자 속으로 기뻐하며 부끄러워하면서 말했다.

"황상께서 신첩이 갯버들의 소박함을 지닌 것을 꺼리지 않아 주셨을 뿐이지요."

 

당에 들어가 앉자 일찍이 어떤 어린 궁녀가 무늬 비단 방석을 준비하여 반룡 보좌에 깔았고 서월에서 조공한 서뇌향이 자리 옆에 상감한 파사(페르시아)의 우아한 단춧구멍 동로 안에서 불태워졌으며 희미하고 마치 없는 듯한 연기가 은은하고 끊임없이 공기 속에 들어왔고 방이 향기가 짙고 감돌았다. 나는 현릉이 앉은 것을 보고 그 옆의 화리목교기에 앉았다.

 

현릉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 향은 매우 좋구나. 아침부터 조정 관리들의 상소를 듣다 보니 머리가 어질어질해."

나는 입을 오므리고 웃었다. 보아하니 내가 사람을 시켜 준비한 게 틀리지 않았다.

 

나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황상께서 아침 일찍부터 신첩을 보러 와주시니 분명 황상께서 피곤하실 거라 여겼습니다. 신첩이 차 한 잔을 드려도 괜찮으시옵나이까?"

 

현릉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런 일은 하인에게 시키면 그만이다. 네가 직접 할 필요가 있겠느냐."

 

"신첩이 직접 드리는 차가 어찌 다른 사람과 비교될 수 있겠습니까. 황상께서 잠시 기다려주소서."

나는 웃고는 재빨리 난각에 들어갔고 잠시 후 화전(연옥) 백옥 찻잔을 들고 나와서 그 앞에 다다르자 웃음을 머금으며 말했다.

"신첩이 끓인 차가 황상의 입맛에 맞을지 알 수 있을까요? 황상께서 싫어하지 않으시면 좋지요."

나는 입으로 웃었지만 속으로는 자기도 모르게 조마조마했다. 그가 차를 마시고 기뻐하길 바랐고 차맛이 그의 마음에 들지 않을까 봐 두려웠다. 그가 미간을 찌푸리고 좋아하지 않는다면 어쩌면 좋을까. 

 

현릉이 말했다.

"네가 손수 배합한 이 마음이 짐을 가장 기쁘게 하는구나."

그는 이어서 옥 같이 흰 사기를 열어보고 잔에서 모락모락 피어 나오는 안개와 노을을 닮은 투명하고 푸른색이 생겨났는데 차의 향기가 마음속을 엄습했고 "향이 좋은 차"라 칭찬하며 한 모금 마시자 살짝 눈살을 찌푸리고 깊이 생각하더니 또 한 모금 마셨다. 나는 마음속이 가라앉았고 그가 기뻐하지 않는다고 여겨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자 현릉의 눈썹이 천천히 펴지고 웃음이 점점 짙어졌으며 나를 보고 물었다.

"이 차의 맛은 유달리 차갑고 향기롭구나. 짐이 한참을 음미하였는데 찻잎은 월주 한차(寒茶)고 솔잎과 매화향이 나는데 나머지는 분명치가 않다. 네가 와서 짐에게 무엇을 넣었는지 말할 수 있느냐?"

 

내가 웃으며 말했다.

"황상께서 혀가 매우 신통하십니다. 이 차로 말하자면 '세한삼우'입니다. 솔잎, 댓잎과 매화를 채취하여 함께 물에 삶았고 그 물은 여름에 일출하기 전 연잎에 맺힌 이슬입니다. 이 같이 참신하죠."

"옛사람들이 말하기를 '차는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다'더니 오늘 완 경(卿)의 차를 마시고 짐이 옛사람의 말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알았다."

임신거의 <청심야가이(清心也可以)>에서 유래.

  

나는 얼굴을 살짝 붉혔다.

"황상 과찬이십니다. 기연이 공교롭게도 신첩이 작년에 두 항아리를 받아 마시기 아까워 특별히 한 항아리를 가지고 궁에 들어와 당 뒤의 배나무 밑에 묻었는데 이틀 전에 사람을 시켜 파냈나이다."

"지금은 당리궁에 사는 게 익숙해졌느냐? 짐이 보기엔 좀 궁벽해 보인다."

"황상의 보살핌에 감사드리나이다. 신첩은 아직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조용하고요."

나의 목소리가 약간 낮아졌다.

"그런 시끌벅적한 것들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나이다."

 

현릉의 손끝이 내 뺨에 미끄러졌고 손을 들어 내 귀밑머리의 잔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는데 마치 뜨거운 한 줄기가 그의 손끝을 따르더니 뺨에서 갑자기 멈춘 것 같았으며 그가 가볍게 말하는 것만 들렸다.

"짐이 알겠다. 당리는 조용하고 지기(地氣)가 좋은 데다 몸에 이롭지."

그는 그저 웃으며 한 쌍의 눈이 나를 살폈고 잠시 후 말했다.

"짐이 보기엔 네 안색이 많이 좋아졌구나. 좋아져야 마땅하지."

"원래 큰 병도 아니고 신첩의 몸이 허약할 뿐입니다. 지금 황상의 복과 은혜가 있으니 당연히 더 빨리 좋아지지요."

 

현릉은 내가 웃음을 머금는 것을 보고 말하지 않았는데 눈빛이 사로잡힌 기운을 감추었다. 나는 그의 웃음이 꽤 괴상해 보였는데 답답해서 이해되지 않았다. 언뜻 곁에서 시중드는 근석이 뺨이 붉어지고 입을 오므리며 미소 짓는 것이 보였다. 갑자기 마음속이 환해졌고 저도 모르게 얼굴이 불덩이 같았으며 귀뿌리까지 열이 나 끓는 물에 담긴 것 같았다.

 

현릉은 내가 수줍어하는 것을 보고 미소 지으며 말했다.

"완 경이 부끄러워하기 시작하니 정말로 짐이 좋아서 차마 손에서 떼어 놓지 못하게 하는구나."

 

나는 옆에서 서서 시중드는 궁녀와 태감이 더 많을 거라고 생각하자 황급히 손을 빼려고 하며 급하게 말했다.

"황상..."

 

그의 웃음은 더 짙어졌다.

"두려우냐?"

 

나는 뒤를 돌아보았는데 어느새 근석과 그들은 이미 당 밖으로 물러났고 멀리 우리를 등지고 서있었다. 현릉은 내 손을 잡고 일어섰고 살며시 나를 품에 앉았다. 그의 옷자락 사이에서 향긋한 용연훈향이 났는데 서뇌향과 뒤섞여 청빈한 향기였으며 그리고 그의 몸에 성년 남자의 생소하고 강렬한 기운이 있어 계속 나를 궁금하게 하고 빠져들게 했다. 그의 숨결의 따스함이 내 목덜미 사이를 스쳤고 약간의 습하고 무더운 의미가 있었으며 여름날에 얇은 옷을 입고 시원함을 갈망하는 것 같았다.

 

창밖의 해당화 가지에는 바라며 기다린 대로 꽃술을 토하며 새빨갛게 만개했다. 현릉은 조용히 나를 안았다. 시일이 따스했고 영심당 내의 얇은 망사는 새롭게 바꾸어 강녕에서 직조해 바친 것으로 비 올 때 쓰는 천청색 선익사로 연기처럼 몽롱했는데 따스한 바람이 불어와 그 얇은 창사가 소녀의 미소 짓는 뺨처럼 살며시 부풀어올랐다. 바람이 불자 나뭇잎의 소리가 윙윙거렸고 친밀한 속삭임 같았다. 그 소리는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었고 아득히 닿지 않는 저편 같았으며 나를 부드럽게 불렀다. 내가 비록 담대하고 구속되지 않지만 이때 손바닥 안에서 나른함이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느낌이었고 머릿속은 망연한 공백이었으나 마음속으로는 오히려 기뻐하고 있었다. 펄펄 끓는 달콤함에 이렇게 눈을 감고 만취하기를 바랄 뿐이었고 아쉬워하며 손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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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시녀들 부축해 일어나니 귀엽게 힘이 없는 듯"이라는 뜻으로 장한가의 일부입니다.

 

6월은 바빠서 빠르면 7월 늦으면 8월에나 다시 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옥요 2019.06.02 04:08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해요~~

  2. 재밌어요! 2019.06.07 20:17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3. 달콩 2019.06.09 23:34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소설은 견환 1인칭이라 가끔 견환 생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게 재밌네요. 3인칭 서술이면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갈 부분에서 앗... 견환 너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하고 자꾸 멈칫 하게 되요. 자기 여동생인데 냉정하게 스펙 평가를 한다던지 온실초에 대한 생각이라던지...^^;
    번역 감사합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시올 2019.06.10 08:16 신고

      솔직히 원작 견환은 처음 봤을 때 좀 많이 깼습니다...

완벽이 그를 배웅하자 유주가 말했다.

"소저께선 이미 황상의 뜻이 있는데 왜 일찍 병을 낫게 하지 않으시나요? 너무 흔적이 드러나서 의심을 살까 봐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건 첫 번째야. 더 중요한 건 황상의 마음이지. 내 병이 빨리 낫는다면 황급함에 실수를 면하기 힘들어. 넌 남자에 대해서 알아야 해. 손에 넣기 어려울수록 더 진귀하고 더는 놓을 수 없게 되지. 더군다나 그분께선 제왕이셔. 어떤 여자를 못 만나봤겠어. 만약 내가 다른 여자처럼 제 마음대로 취하시게 된다면 너무 일찍 만족하셔서 그분께선 내게 흥미를 잃으실 거야. 너무 오래 끌고 황상께 비위를 맞추는데 오래 걸리면 비위에 거슬리기 쉬워. 그밖에 후궁에서 총애를 다투는 데 시간이 가장 소중하지. 만약 이 시간 속에서 다른 사람이 빨리 승리한다면 후회해봤자 이미 늦었어."

 

유주가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노비가 기억하겠습니다."

 

내가 기이해하며 말했다.

"기억해둬서 뭐 하게?"

 

유주가 뺨을 붉히며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노비도 나중에 시집가야 하는 사람이니 지아비를 사로잡는 법을 배워야죠."

 

나는 웃다가 숨이 찼다.

"이 죽일 계집애. 이제 몇 살 됐다고 남편 얻으려는 생각이야."

 

유주가 몸을 돌리고 말했다.

"소저 어찌 이러세요. 남들이 소저를 따라 말하면 소저깨선 저를 비웃으시죠."

 

나는 웃음을 가까스로 멈추었다.

"그래, 그래. 비웃지 않을 게. 나중에 반드시 내가 너에게 좋은 혼사를 골라서 네 숙원을 풀어주마."

 

다음날 내무부 총관 황규전이 직접 한 무리의 내감과 궁녀를 데리고 와서 내게 고르라고 하였다. 나를 보더니 재빨리 머리를 숙이고 웃으며 말했다.

"완 주자 길하소서!"

 

내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황 총관이 잘못 기억하고 있군. 나는 아직 빈위에 있는데 '소주'라 칭하지 않고 '주자'라 칭하다니."

 

황규전은 문전박대를 당하자 조소했다.

"노재의 기억력 좀 보시지요. 그러나 노재는 속으로 소주께서 이렇게 성권을 받으실 것이라 여겼고 주자가 되시는 것도 조만간의 일입니다. 그래서 서둘러 외쳐 미리 소주께 경하드린 것입니다."

 

내가 웃음을 머금으며 말했다.

"나는 그대의 호의를 알고 있소. 그런데 다른 사람은 모르는 것이 그대가 여러 해동안 내무부 총관이면서 아직도 규율을 알지 못하다고 여기더군. 그대의 약점으로 곤란을 겪으면 좋지 않을 것이오. 다른 사람을 부를 것 없이 나를 보고 경망스럽게 분수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더군."

 

일장연설을 끝내자 황규전은 바삐 머리를 조아렸다.

"예, 예, 예. 노재가 소주의 가르침을 기억하겠습니다." 

 

나는 황규전에게 일어나라는 명을 내리자 그는 허리를 굽히며 얼굴에는 조심스러운 진지함과 비위를 맞추는 웃음이 가득했고 매우 정중하게 말했다.

"주자께 아룁니다. 이 궁녀와 내감들은 전부 정선한 것입니다. 하나하나 출중하지요. 소주께서 내감 여덟 명과 궁녀 여섯 명을 골라 주십시오."

 

나는 땅바닥에 까마귀처럼 검은 한 무리를 한 곳에 모으고 세심하게 용모가 맑고 빼어나며 생김새가 충직하고 손발이 민첩한 십여 명을 고르자 소윤자와 근석에게 말했다.

"이 몇 명을 데리고 가서 잘 가르쳐줘라."

 

황규전은 소윤자가 사람들을 데리고 가는 것을 보고 사죄하며 웃고는 뒤에서 무릎 꿇고 있는 어린 태감을 가리키며 말했다.

"노재가 아둔하여 시비를 가리지 못했습니다. 지난 며칠간 내무부의 자질구레한 일을 처리하느라 바쁜 탓에 소주궁에 탁자와 의자를 칠하는 것을 소로자를 가리켜 보고하게 하고 처리하도록 했습니다. 누가 이 개 같은 노재가 일하지 않고 전부 잊어버렸을 줄 알았겠습니까. 노재가 특별히 이놈을 데려와 소주께 사죄드립니다. 소주께서 처리해주십시오."

 

내가 대답할 틈도 없이 패아가 내 치마 위의 여의패 아래로 드리워진 술이 바람을 맞아 헝클어진 것을 보고 반쯤 쭈그려 앉아 나 대신 정리하며 말했다.

"황 공공의 사죄는 저희가 감히 받을 수 없습니다. 어디 감당할 수 있겠나요? 몰래도 아니고 듣지 말아야 할 말을 들었는데 숨이 막혀 당황할 지경입니다!"

 

내가 꾸짖었다.

"점점 더 규율을 모르는구나. 무슨 허튼소리냐!"

패아는 내가 화를 내며 말하자 비록 매우 화가 나서 마음이 평온치 않은 모양이었으나 바로 입을 다물고는 감히 말을 하지 못했다.

 

황규전은 패아에게 꾸짖음을 당하자 당혹스러워했고 멋쩍게 웃으며 말할 수밖에 없었다.

"패 아가씨의 말을 들으니 모두 노재가 아랫사람을 잘못 가르쳤나 봅니다."

 

내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공공의 말이 과분하오. 공공은 이 내무부의 일을 처리하는데 매일 적게 말해도 백여 건은 되니 아랫사람에게 잠시 소홀할 수 있소. 무엇 때문에 사죄의 말을 해야 하오? 하지만 내 측근 궁녀가 철이 없어 공공에게 우스운 꼴을 보였소."

 

황규전은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쉬고 말했다.

"별말씀을요. 소주의 관대함에 감사드립니다. 노재들은 이후로 반드시 소주께 전심하여 힘이 되어드릴 것입니다."

그리고 웃으며 말했다.

"노재가 이미 사람을 시켜 새 탁자를 들고 왔습니다. 소주께서 조잡하다 꺼리지 마시길 바랍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마음속으로 생각해주어 고맙소. 가보시오."

 

황규전은 내가 별 말이 없자 편안하게 말했다.

"완빈 소주께서 다른 일이 없으시면 노재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완빈 소주께서 쾌차하시길 축원합니다."

 

황규전이 나가는 것을 보았다. 나는 낯빛을 흐리고 패아를 꾸짖었다.

"왜 이렇게 경솔하느냐? 말이 조금도 신중하지 못하다니!"

 

패아는 내가 처음으로 그녀에게 심한 말을 하는 것을 보고 저도 모르게 겁이 나 황급히 무릎 꿇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황규전은 바람 부는 대로 돛을 탈 테죠. 이전에는 소주의 비용을 가로채더니 지금은 소주가 총애를 받는 걸 보고 다른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니..."

 

"내가 어찌 그걸 모르겠느냐? 자기 마음속으로 분명히 알고 경계하여 행동해야지 서로 감정이 틀어져서 말다툼하다니 사람이 좋든 나쁘든 내무부 총관이다. 이런 일이 알려지면 남들에게 우리가 옹졸하고 경박하다고 비웃음을 사고 공연히 입방아 찧겠지."

내가 살며시 탄식했다.

"네가 날 위한 건 안다. 하지만 일시적인 감정으로 다투지 말아야 해. 약점을 잡는 일을 많이 보았고 궁중에서는 누구나 다 할 수 있지만 황규전 한 명은 안 된다."

 

패아가 고개를 숙이자 낯빛이 부끄러움을 머금었고 나지막이 말했다.

"노비가 잘못을 알았습니다."

"기억해두면 좋다. 하지만 네가 그 노재를 말로 일깨워 주는 것도 좋지. 그에게도 꺼리는 바가 있지만 무슨 일이든지 분수를 잃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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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경험 없는 16살짜리가 어떻게 이렇게 밀당을 잘 아는 걸까요...

미장과 릉용이 나간 후, 당리궁 안이 다시 시끌벅적해지기 시작했다. 그 떠들썩함은 황제가 넉넉하고 정교한 상을 내려 내 궁실에 들어오면서 시작되었고 황제가 개입한 연고 때문이었으며 이 떠들썩함은 내 입궁 초보다 훨씬 더했다.

 

내 갑작스러운 진봉과 영총은 이 파도에도 놀라지 않는 후궁에서 지극한 충격을 야기했고 평소에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무수한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내가 진봉한 동시에 강등된 여경의의 옛일을 말하자면 용솟음치는 파도에 휩쓸린 고엽처럼 빠르게 묻혀 버렸고 소수의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더 이상 그녀의 존재에 관심을 갖지 않았으며 옛날 득총하여 소리 높여 노래 부르던 여경의의 소실은 일말의 물보라도 일으키지 않았다. 그리고 후궁의 뭇사람들의 호기심은 흠모와 질투를 수반하였고 예물과 문안의 형태로 내 궁에 끊임없이 흘러들었으며 나를 쉴 새 없이 응대하게 하였다.

 

해질녘 황제는 결국 지의를 내렸는데 나는 그와 태의 외에는 문을 닫아 면회를 사절하며 잘 보양하라는 것이었다. 결국 다시 잠시의 한가로움을 얻었다.

 

나는 이 생소함과 짧음에서 호기심, 적의와 환심으로 가득 차 있는 떠들석함에 매우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나는 전투를 맞이하는 자세로 황제의 총애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고 나는 그에게 정과 애모를 바칠 것이다. 나는 이것이 위험과 가시밭길로 가득찬 길인지 아닌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 봄볕의 명미한 오후와 황제 현릉의 웃음이 나에게 다른 문을 열어주었다. 그것은 유혹과 아름다움의 번화함이 충만한 세계였다. 내가 여태껏 접해보지 못했고, 비록 그 안은 칼 빛과 검 그림자와 독약의 지분 향기가 가득하지만 나는 그곳에 대한 동경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 밤에 나는 거울 앞에 오랫동안 서 있었고 한 가지 일만 했는데 바로 자신을 후당(後堂)에 혼자 두고 닫아 온 방에 빨간 촛불을 켜며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았다. 나는 가장 아름다운 옷을 입고 가장 화려한 장신구를 달았으며 옷을 하나씩 입고 벗었다. 나는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아름다운 어린 얼굴과 몸을 응시했고 문득 내가 이렇게 평생을 잠적하여 이 적적한 깊은 궁전에서 결국 늙어 죽는다는 데 회의감이 들었다. 이것은 내가 책에서 보았던 두 개의 성어를 생각나게 하였는데 "고방자상(孤芳自賞), 고영자련(顧影自憐)"이었다.

역) 자신을 고결한 인격자라고 여기며 스스로 만족해하고, 자기의 그림자를 보고 자신을 한탄하다"

 

현릉의 출현은 나로 하여금 갑자기 <시경>과 악부에 있는 사랑에 관한 아름다운 시구를 사랑하게 했다. 설령 내가 그를 청하왕으로 여긴 후에 자신의 그에 대한 그리움을 억누르기로 결정했더라도 자신의 상상을 억누를 수 없었다. 내 상상에서 그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의 남녀 주인공들은 모두 나와 그가 되었다. 그 며칠 동안 나는 이런 상상이 내 일생을 이어갈지 아닐지 의심해 왔고 나의 고요하고 지루한 삶의 유일한 즐거움이 되어주었다. 가끔 나는 온실초의 주제넘은 구혼과 이 밝은 봄날이 내게 추억과 잊지 못할 유일한 일이 될지 아닐지 생각할 것이었다. 나는 심지어 만약 미장이 말한 대로 황제의 힘에 의지하여 내 가족에게 더 나은 앞길이 생길까 생각했다. 내 인생은 그로 인해 아마 희박할 수도, 아마 융숭한 총애일 수도 있기 때문에 좀 더 의미가 있다.

 

나는 내 몸과 얼굴에서 칩복 한 지 오래된 것들을 발견했고 나는 이제 이것들이 욕심내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주 좋다. 그것들이 생각하는 것은 나와 같다.

 

기왕에 결정된 바에야 그럼 나는 최고의 개막을 원했고 내가 후궁이라는 비린내 나는 바람과 피가 섞여 내리는 비의 땅에서 할 걸음 한 걸음 디디게 했다. 

 

나는 더없이 정중하게 옷을 입었고 문을 열었을 때 나의 표정은 이미 여느 때와 다름없었다. 나는 소윤자에게 말했다.

"태의원에 가서 온대인을 데려 오너라."

 

온실초는 오는 속도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빨랐다. 나는 모든 사람을 물리고 유주와 완벽만 남겼다. 그의 절박한 표정을 보고 나는 그가 이 일을 들은 것을 이미 알았다.

 

궁위의 일은 성쇠와 영옥이며 영원히 긴 발도 없이 가장 빨리 달릴 수 있는 것은 궁정의 구석구석까지 널리 퍼질 수 있으며 가장 작은 문틈까지 모두 뜨거운 소문과 유언비어가 숨어있다.

 

내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이젠 피할 수 없어요."

 

그의 낯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고 눈 깜짝할 사이에 눈빛이 불타오르더니 말했다.

"신은 황상을 진정시킬 수 있습니다. 소주께서 성가를 모시는데 적합하지 않다고요."

 

내가 그를 쳐다보았다.

"만약 황상께서 다른 태의를 보내서 나를 진료하러 온다면요? 내 몸은 단지 약물 때문에 병이 있는 걸로 보이는 거지 속은 멀쩡해요. 만약 검사하러 온다면, 당신은 내 머리가 필요한가요? 우리 일가의 머리가 필요해요?!"

 

그의 입이 살짝 벌어지고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눈빛이 죽은 물고기처럼 생기가 없었다.

 

나는 그를 힐끗 보고 담담히 말했다.

"온대인은 고견이 있나요?"

 

그가 잠자코 있다 일어나 몸을 굽혔다.

"신은 완빈 소주의 분부에 따르겠습니다."

 

내가 온화하게 말했다.

"온대인은 겸손하시군요. 난 여전히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요. 그렇지 않으면 곳곳에 함정이니 환아는 정말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아요."

 

온실초가 말했다.

"신은 초심을 버리지 않고 소주를 정성껏 보호하겠습니다."

 

나는 웃음을 머금으며 말했다.

"그럼 됐어요. 온대인이 환아의 병을 치료해주세요. 하지만 너무 빨리 치료하지는 마세요. 한 달로 기한을 정하죠."

"신이 약물의 분량을 점차 줄이고 적시에 보약을 넣으면 큰 지장이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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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에선 견환이 온실초한테 최소한의 예의는 지켰는데 원작은 완전히 호구 취급...

  1. 호잇 2019.05.31 15:25

    번역넘 멋져요
    재밌게 잘읽었어요~~~^^

  2. 2019.06.01 12:03

    원작의 견환은 참 재수없어요..

    • 시올 2019.06.01 14:55 신고

      드라마 릉용과는 다른 의미로 현실에서 보고 싶지 않은 캐릭터예요.

  3. 꿀잼 2019.06.16 09:40

    대체 온실초가 뭔 죄를 지었다고 저렇게 대놓고 무시하는지..

    • 시올 2019.06.17 21:08 신고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면 대체로 일말의 정이라도 있는데 견환은 그마저도 없어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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